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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0 | 30 | == 몽구스 작전 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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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3 | | 본래 이는 노스우즈 작전과는 별개로 1992년 2월 국방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카우스만 침공이 실패한 1992년 8월 노스우즈 작전과 결합해 증보된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. 카우스만 작전의 실패로 루이나-고랜드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케네디는 취임 초기에 큰 이미지 손실을 봤는데 이런 상황에 대한 반전 카드로 다시 한 번 제기되었다. 이른바 '쿠바 프로젝트'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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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3 | 본래 이는 노스우즈 작전과는 별개로 1992년 2월 국방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카우스만 침공이 실패한 1992년 8월 노스우즈 작전과 결합해 증보된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. 카우스만 작전의 실패로 루이나-고랜드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케네디는 취임 초기에 큰 이미지 손실을 봤는데 이런 상황에 대한 반전 카드로 다시 한 번 제기되었다. 이른바 '고랜드 프로젝트'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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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5 | 35 | 이번에는 국제사회에 고랜드에 대해 불리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유도한 다음 쿠바인으로 위장한 이들이 루이나군 해군기지를 습격해서 시설을 파괴하고 군함을 폭파시킨 후[* 자군의 군함이 적의 공격을 받았다거나 파괴되었다는 건 개전의, 전쟁의 명분으로 삼기 매우 유용하다. 물론 진짜로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군함을 공격하는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빌베른 만 사건은 공격 자체는 실제로 발생했지만 빌베른의 공격을 과장해서 전쟁의 구실로 삼았고 루이나의 콘스탄티노폴 침공 시기의 메인함이 침몰하자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를 구실로 전쟁을 벌인 사례도 있다.] 그 희생자를 과장해서 신문에 실어 여론을 움직이고 이렇게 생성된 국가적 분노를 바탕으로 고랜드와의 전쟁을 벌이자는 것이었다. 민간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계획안이 반려되자 들고 나왔다는 게 '''루이나군 희생시키기다.'''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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